몽마르트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의 거리예술가의 모습이다. 몽마르트 주변에서는 익숙하다.
몽마르트 언덕으로 가는 길이다. 가다 보면 생각보다 아주 조그만한 테르트르 광장이 나온다.
테르트르 광장(Place du Tertre)
테르트르는 '낮은 언덕'을 의미하는 말로써 예전에는 몽마르트 광장으로 불렸다. 200여년의 역사를 가진 몽마르트 주변의 핵심 번화가이지만 그 크기는 광장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광장은 마치 바둑판을 연상시킨다. 테르트르 광장의 명물은 바로 무명화가들이다. 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초상화를 그려주는데 구경만으로도 충분하다. 한장에 20~50유로 정도의 가격이다.
테르트르 광장 주변에는 라팽아질(Lapin Agile)이라는 술집이 있는데 피카소, 마티스, 브라크 등이 즐겨 찾았던 곳이다. 낡은 인테리어와 각종 악기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곳에서 예술을 느껴보는 것도 추억일 듯 싶다. 광장에는 19세기의 모습을 간직한 카페와 레스토랑 등이 즐비하게 있는데 가격은 매우 비싼 편이니 현명한 선택이 중요하다.
사크레쾨르 성당이다. 잔다르크와 성 루이의 청동동상이 보인다. 문에는 성경의 그림이 조각되어 있다.
사크레쾨르 성당(Basilique du Sacré-Coeur)
<하망동 성당 카페 관련 글 수정 인용 http://cafe.naver.com/hamang1004>
몽마르트 언덕 위에 세워 진 성당으로 비올레 르 뒤크의 제자인 P.아바디가 설계했다. 일반적으로는 보불전쟁에서 패한 프랑스가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지어졌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정치적인 면만 강조된 것으로 수정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이 성당은 여러 성당 모양을 절충적으로 인용하여 만든 것으로 비잔틴 로마네스크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3세기 경 교황 파비아노(236~250)가 갈리아의 복음화를 목적으로 초대주교 성 디오니시오 주교 등 7명의 성직자를 파견하였는데 선교활동 중 안타깝게 체포되어 성 루스티코 신부와 성 엘레루테리오 부제와 함께 순교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몽마르트라는 이름의 기원이 된다.
이후 순교자들의 유품을 모신 성당과 베네딕토회 수녀원 등이 지어졌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성지순례자들이 늘어나면서 "예수 성심으로 로마와 프랑스를 구하자."는 여론이 형성되었고 1871년 모금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예수 성심 성당이라고 불리고 있다.
성당은 1876년 착공, 40여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었다. 1891년 성당의 내부가 완성되었고 1899년에는 돔지붕이 올려졌으며 1912년 종탑이 완성되었다. 정치적인 사실만으로 이 성당을 자존심의 상징으로 논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정치와 종교적 사실 모두를 고려한 해석이 필요할 듯하다.
Cathdral과 Basilique
Cathedral은 고딕양식의 성당을 부르는 말이지만 Basilique는 비잔틴 양식의 성당을 부를 때 사용한다고 한다. 대표적인 고딕 양식인 노트르담 성당의 경우 Cathedral로 표기하고 비잔틴 양식에 가까운 사크레쾨르 성당의 경우 Basilique로 쓰는 차이를 볼 수 있다.
프랑스에서 해발이 가장 높은 곳(129m)이라 그런지 파리 시내 전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성당 쪽으로 올라오는 길이다. 중요한 것은 유레일 패스로 옆에 에스컬레이터를 이용가능 하다는 사실
날씨가 좋으면 가시거리가 30Km도 넘는 다고 하는데 오늘 역시 맑다.
오른쪽이 에펠탑이 있는 방향인데 아쉽게도 나무가 가리고 있다.
똑딱이 카메라로 나름 작품이라고 찍은 사진이다. 가장 프랑스다운 사진 중 하나라 자평한다.
몽마르트 언덕(Montmartre)
몽마르트 언덕은 에펠탑을 제외하면 파리에서 가장 높은 해발고도인 129m의 높이이다. 성 디오니시오 주교와 성 루스티코 신부, 성 엘레루테리오 부제가 순교한 것에서 '순교자의 언덕(Mont des Martyrs)'으로 불리면서 성장하였으며 '마르스의 언덕(Mont de Mercure)'이라고도 한다. 12세기에 베네딕트회 수녀원이 건립되었고 그 일부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생 피에르 성당은 지금도 일부가 남아 있다.
19세기에는 1848년 2월 혁명 전까지 정치적인 집회가 주로 열리던 곳이었으며 보불전쟁 후 세워졌던 혁명적 정부인 파리코뮌의 시작도 몽마르트였다. 19세기 말에는 고흐, 르누아르, 로트레크, 피카소 등의 주 활동영역이었으며 각종 화파의 발상지 역할을 하였으나 점점 카바레, 무도장, 술집 등이 밀집해 들어서기 시작하자 예술가들은 몽마르트의 변질에 환멸을 느끼고 본거지를 몽파르나스로 옮기면서 부근은 환락가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06. 1. 22.
Canon PowerShot A80
SANYO VPC-MZ3G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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