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위한 변명,
배가 항구에 정박중일 때는
아무런 위험도 없다. 하지만 배는
그러자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생각은 이러했다. 슬퍼해도 된다. 그러니 슬픈 일이 생긴다고 두려워할 것이 없다. 기뻐해도 된다. 그러니 기쁜 일이 생긴다고 걱정할 것이 없다. 어떤 감정이 일어나도 상관없으니 그것 때문에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아름다운 꽃이 향기를 발하며 바로 눈앞에 있다 해도 고뇌 속에 빠져 있는 사람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웃음은 울음이 약간 진화된 꼴이며, 그래서 울음은 인간의 근원적인 곳에 좀더 가까이 닿아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 이 둘은 본질적으로 같다.
어떤 의미에선 울음이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해탈(解脫)이다.
춤을 추는 순간 사라지는 것이다. 춤은 보이지만 춤추는 자는 사라지는 것이다.
깨어 있는 의식으로 나는 말한다. 마치 용변을 보듯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해야겠다고.
인간은 태어나고 죽고, 꽃은 피고 지고, 세상은 변하지만, 거기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그 변화하는 다양한 양상들에 아무 뜻이 없다.
“잠을 자고 있을 때, 그 순간에 그대는 행복하다고 느끼는가?”
“행복하다, 불행하다의 느낌조차 없을 것이다. 그것이 그대의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나를 사랑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를 사랑할 때도 있고, 사랑하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 가족은 태평양을 끼고 삼각형이 되어 살고 있다. 나는 이곳에, 남편은 뉴욕에, 희는 서울에 있다.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콩가루 집안’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누가 뭐래도 가족으로서 서로 일체감을 느끼고 있다. 다만 우리 사이에 대양(大洋)이 흐를 정도로 우리는 서로에게 큰 자유를 주고 있을 뿐이다.
흔히들 가정은 편안한 곳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가정이 자유로운 곳이라곤 말하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자유 없는 편안함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남의 눈총이 무서워 타협하는 자는 자기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남의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될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가식적인 사람은 없다. 가식은 교육받는 것이다.
“… 너는 신에 대해서 배웠을 뿐이지 그를 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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