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황이 본격화되면서 와인 시장도 거품이 빠지는 추세다. 소비자들은 화려하고 값비싼 와인보다는 부담 없이 경제적으로 즐길 수 있는 와인에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최근엔 레스토랑보다는 집에서 간단하게 즐기는 한식과 함께 어울리는 와인이 주목받고 있다. 고깃집이나 한식당에 와인을 직접 들고 가서 마시는 사례도 늘고 있다. ‘식객’이자 와인애호가로 알려진 허영만 화백은 “지금까지 와인과 가장 잘 맞았던 음식은 홍어에 김치와 돼지고기를 곁들인 삼합이었다”며 “톡 쏘는 삭힌 홍어 맛을 와인이 부드럽게 중화시켜 줘 와인이 술술 넘어갔다”고 말했다. LG상사의 트윈와인 관계자는 “요즘은 한식과 궁합이 뛰어난 와인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환영 받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요즘 집에서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안주와 그와 어울리는 와인엔 무엇이 있을까.
허영만 화백과 LG 트윈와인 (www.twinwine.com)의 조언을 받아 와인&안주 베스트 5를 꼽아 보았다.
1. 소비뇽 블랑과 과메기의 환상 궁합요즘 가장 합리적인 가격으로 집에서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음식이 바로 과메기다. 겨울철 찬 바닷바람에 며칠씩 말려 짭짤한 바다 내음을 한아름 품은 과메기야말로 지금이 제철. 좋은 과메기는 주로 차지면서도 꾸덕꾸덕하게 씹히는 질감을 자랑한다. 이 맛을 살려주면서 과메기만의 비릿함을 자연스럽게 감싸주는 데는 뉴질랜드의 소비뇽 블랑만한 와인이 없다. 약간 차갑게 둔 ‘실레니 소비뇽 블랑(Sileni Sauvignon Blanc)’은 잘 익은 열대 과일향이 매력적. 과메기가 함유한 기름기와 겉돌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레드 와인을 잘 선택해도 과메기는 훌륭한 안주가 된다. 포도의 맛이 비교적 강하고 타닌이 부드러운 ‘실레니 피노누아(Sileni Pinot Noir)’가 대표적이다.
2. 꼬막 질감을 살려주는 화이트 와인매년 11월부터 4월 사이,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의 드넓은 갯벌에 가면 눈을 돌리기가 무섭게, 발을 떼기가 겁나게 제철 맞은 꼬막을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벌교의 갯벌은 물이 깊고 뻘이 차져 꼬막이 특산품으로 유명세를 탈 정도로 쫄깃하면서 진득한 맛이 일품이다. 고막, 고막 조개, 안다미 조개라고도 불리는 꼬막은 대표적인 고단백, 저지방, 저칼로리의 알칼리성 식품이다. 타우린이 풍부하고 담석 용해, 간장의 해독작용, 콜레스테롤 저하 등의 효과가 있다. 그래서 예부터 임금의 수랏상에 올랐다. 아무런 양념 없이 살짝 삶아 초고추장을 곁들이면 탱탱하게 살아있는 질감이 일품인 꼬막은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인 피노 그리지오가 잘 어울린다.
3. 꽁치구이의 풍성함을 살려주는 메를로 와인‘꽁치는 서리가 내려야 제맛’이라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국내에서 오래 전부터 사랑받아온 생선이다. 일본에선 ‘꽁치가 나오면 안마사가 굶는다’고 할 정도로 꽁치가 가진 영양은 풍부하다. 꽁치는 구워서 먹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조리법. 별도의 양념 없이 소금에만 절여진 채로 조리해도 그 맛이 일품이다. 꽁치는 이처럼 지방이 풍부하고 고소하며 담백한 생선이지만 기름기가 많고 비린 향도 강하다. 하지만 풍부한 아로마를 자랑하는 메를로 품종의 레드 와인과 함께하면 입 안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 든다. 특히 육감적인 스타일의 메를로 와인은 꽁치의 기름지고 풍부한 맛과도 잘 어울린다. 미국산 ‘글로리아 페레 메를로(Gloria Ferrer Merlot)’는 체리향과 호두, 코코아의 복합적인 풍미가 어우러져 꽁치와 뛰어난 궁합을 자랑한다.
4. 불고기엔 토스카나 레드 와인이 제격집에서 먹을 수 있는 대표적인 음식은 소 불고기. 양념에 따라 다양한 맛으로 미각을 자극하는 소 불고기는 너비아니의 일종으로 고기를 얇게 저며 양념해 구운 것이다. 일반적으로 불고기를 만들기 위해선 가로세로로 잔칼질을 해 준 후 배즙, 청주, 설탕 등으로 잠시 재워 고기가 연해지도록 한다. 굽기 30분 전엔 불고기 양념에 재워두고, 구울 때는 고기의 단백질 응고점인 40℃ 전후 중불에서 요리해야 맛이 좋다. 약간은 달짝지근한 불고기엔 이탈리아 중부의 토스카나에서 생산된 산지오베제 품종의 레드 와인이 잘 어울린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을 레이블에 사용한 다빈치 와인이 대표적. 보라색을 연상시키는 컬러에서 피어나는 상큼한 향이 불고기 소스와 잘 맞다. 양념을 하지 않은 등심의 경우엔 프랑스 론 지방의 레드 와인, 육즙이 많은 갈빗살엔 호주 카베르네 소비뇽을 함께하는 것도 좋다.
5. 밋밋한 새조개엔 달콤한 스파클링 샤르도네새조개는 조개의 귀족이라 불릴 정도로 조개 중 으뜸으로 치는 고급 음식. 특히 1~3월이 되면, 새조개는 7~10월의 산란기 이후 최고로 살이 올라 제철을 맞는다. 새조개는 살집이 굵고, 새부리처럼 생긴 삼각형 모양의 흑갈색 발이 유독 긴 것이 특징이다. 공 모양으로 볼록한 양 껍질을 까놓으면 모양이 작은 새와 비슷하고 이는 곧 새조개라는 이름으로 붙었다. 어패류 중에서 비린 맛이 적고, 새부리처럼 생긴 통통한 발의 쫄깃함이 특징인 새조개는 살짝 데칠 경우, 연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도드라진다. 이처럼 비린 맛과 향이 적은 조개류는 화이트 와인 샤르도네와 가장 무난하다. 특히 익힌 조개류는 질 좋은 샤르도네 샴페인 등을 첫째로 꼽는다. ‘세규라 비우다스 아리아(Segura Viudas Aria)’는 프랑스 샴페인 못지않은 미세한 거품을 자랑하는 스페인 까바(스파클링 와인)다. 기온이 낮을 때 포도를 수확해 더욱 더 강렬한 향을 자랑한다. 풍부한 향이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새조개의 담백한 맛에 우아한 멋을 더해준다.
글 손용석 포브스코리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