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가득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는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에 반해 집을 보자마자 계약을 결심했다는 집주인. 하지만 막상 이사해보니 구조가 아주 엉망이었다. 지은 지 10년이 넘은 복도식 아파트는 평수에 비해 훨씬 좁았고, 특히 주방은 수납공간이나 동선을 전혀 고려치 않아 살림살이를 모두 쌓아두고 살아야 할 판이었다. 2년 동안 꿈꿔온 내 집에 대한 로망이 무너지는 순간. 때문에 집주인 신지안 씨는 그간 생각해둔 집의 모습을 현실로 구현해줄 스타일리스트를 찾아 개조를 의뢰하게 되었다. |
1 과감히 소파를 없애고 쿠션을 두어 편안한 분위기로 꾸며 놓은 북 카페 콘셉트의 거실. 2거실 벽 한 면에는 트렌디한 카페에서 흔히 쓰는 합판으로 짠 책장이 TV 대신 놓여 있다. 사진을 보고 오해 마시길. 철제 캐비닛 안에 있는 것은 TV가 아닌, 컴퓨터 모니터다. 3 현관에는 진짜 카페처럼 초록색 유리문으로 중문을 달았는데, 전체적으로 통일감이 생기고, 유리문이라 답답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공간이 넓어 보인다. 현관 바닥은 에폭시로 깔았는데, 멋스럽기도 하고 타일을 깔았을 때보다 청소도 편하다. |
온 동네 힙 카페를 연구하다 집주인이 스타일리스트에게 당부한 2가지는 거실을 카페처럼 꾸며달라는 것과 신혼여행지인 유럽에서 보았던 것 같은 빨간색 욕실을 만들어달라는 것. 첫 집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컸던 집주인의 열정은 스타일리스트가 “시장조사를 해보라고 했을 때, 이보다 더 숙제를 열심히 한 케이스가 없았다.”며 칭찬할 만큼 대단했는데, 그렇게 다니며 쓴 커피값이 거짓말 조금 보태 ‘개조 비용 못지않게 들었다’고 할 정도다. 하지만 틈나는 대로 삼청동이나 홍대 앞, 신사동 등지의 트렌디한 카페를 돌아다니며 작은 것 하나까지 꼼꼼히 살펴보고 연구한 덕에 이 카페의 알전구, 저 카페의 칠판 수납장 등 그녀의 의견이 상당부분 구체적으로 반영될 수 있었고, 스타일리스트 역시 한결 수월하게 집주인의 로망을 현실로 풀어낼 수 있었다.
북 카페 콘셉트로 꾸민 집 ‘거실’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벽 한 면은 보통 대형 TV 차지다. 그런데 TV 마니아인 이 부부는 서로 TV에 빠져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 너무도 걱정되어 결혼 전부터 “TV는 절대 사지 말자”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TV가 사라진 거실 벽 한 면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아예 책장을 놓고 전체적인 콘셉트를 북 카페로 하자 의견을 모았다. 카페 스타일로 꾸미는 것은 신지안 씨의 오랜 로망으로, 소파 대신 쿠션을 둔 것도 홍대의 한 좌식 카페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공간이 좁아 소파를 놓으면 자칫 답답해 보일 수 있는데, 쿠션으로 대신하니 전체적인 콘셉트와도 잘 어우러지고, 공간도 넓어 보이고, 소파를 구입하는 예산도 줄어 일석삼조의 효과를 보게 되었다. |
1 주방에는 오븐, 밥솥, 식탁 할 것 없이 들어가야 할 것들이 줄을 서 있어 가장 먼저 수납공간을 넉넉히 확보해야 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수납장에 바퀴를 달아 만든 이동식 아일랜드 식탁은 실용성은 물론 편리함도 갖추고 있어 이 모든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해준다. 식탁 위에는 김하윤 작가의 조명 ‘포크-티스푼’을 달아 포인트를 주었다. 2 싱크대는 합판으로 짜 거실과 통일성을 주었다. 사진 오른쪽 키큰장에 실사 프린트 패브릭이 붙어있는 곳은 오븐을 넣어둔 공간. 쓰지 않을 때는 이렇게 감쪽같이 가려둔다. |
좁은 공간을 활용하는 기술 집주인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던 좁고 답답한 주방은 거실과 같은 콘셉트로, 하나로 이어진 공간처럼 만들었다. 거실과 주방을 따로 구분 짓는 게 애매하기도 했거니와, 40~50평 정도의 넓은 집이 아닌 이상 콘셉트를 달리하면 오히려 생뚱맞은 느낌이 들 수 있기 때문. 벽과 천장은 모두 노출시킨 후 화이트 컬러 페인트로 칠하고, 싱크대는 거실 책장과 같은 합판으로 짜 넣어 통일감 있게 연출했다. 또 이동식 아일랜드 식탁을 두어 나름대로 공간을 분리했는데, 이렇게 만들어놓고 나니 정말 카페의 주방과 홀 같은 공간이 완성되었다. 이동식 아일랜드 식탁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수납장에 바퀴와 상판을 달아 만든 것인데, 손님이 많이 왔을 때는 한쪽으로 치워둘 수도 있어 좁은 공간에서 사용하기에 좋다. 사실 스타일리스트는 거실과 주방 사이에 놓인 기둥(초록색으로 칠해진 벽)을 헐고 키큰장을 세워 수납을 해결할 생각이었으나, 환풍기와 지저분한 전선들이 지나는 비트벽이라 헐지 못했다. 때문에 생각보다 날씬해진 키큰장을 보조할 것이 필요했는데, 아일랜드 식탁이 바로 그 역할을 해주고 있다. 아일랜드 식탁은 효율적인 동선의 ㄷ자형 주방을 만들어주고, 조리 공간도 넉넉히 제공해주며, 덩치 큰 식탁을 대신해 공간 활용에 효과적이라는 장점도 있다. |
1 처음 집을 둘러보았을 때 가장 눈에 띈 것이 바로 알전구다. 현관과 주방, 욕실에 설치한 알전구는 큰돈 들이지 않고도 공간을 굉장히 트렌디하게 만들 수 있는 아이템이다. 욕실 문은 칠판으로 만든 슬라이딩 도어를 달아 그냥 닫아두었을 때는 커다란 칠판을 세워둔 듯한 모양이 된다. 2 욕실은 집주인이 원한 대로 빨간 타일로 꾸몄다. 조명은 다른 공간과 마찬가지로 알전구를 사용했다. |
적은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방법 적정 예산을 정해두고 개조를 시작했지만, 생각했던 것이 현실로 하나하나 보여지자 집주인은 점점 하고 싶은 게 늘어만 갔다. 하지만 있는 돈을 탈탈 털어 시작한 만큼 예산을 늘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일. 때문에 스타일리스트는 포기할 건 과감하게 포기하고 돈 들인 곳은 최대한 ‘돈 들인 티’가 나게 하는 방법을 택했다. 불만이 컸던 거실과 주방에 공을 들이기로 마음먹었던 터라, 침실은 상대적으로 예산을 적게 들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선택한 것이 포인트 조명이다. 침실에서 돈을 들인 곳이라고는 오로지 이 갈란드 조명뿐인데, 벽지에 같은 패턴의 실루엣 스티커 벽지를 붙이니, 들인 돈에 비해 훨씬 고급스럽고 분위기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심지어 포인트 벽지도 돈을 최대한 아끼자 하여, 국산 벽지로 딱 한 롤만 바른 건데도 말이다. 주방 역시 디자이너 조명으로 포인트를 주었는데, 합판이 주를 이루어 자칫 가벼워 보일 수 있는 공간을 진중하게 가라앉히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에지 있는 오브제는 그 하나만으로도 공간의 전체적인 인상을 달리 보이게 만들 수 있다.
완성된 집도 만족스럽지만, 집주인은 시장조사부터 시작해 머릿속에 그려왔던 것들이 하나하나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도 재미있고 설레었다고 한다. 예산을 쪼개가며 완성해나갔기 때문에 더 애착이 가고 감동이 컸다고. 기자 역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꼼꼼히 따지고 고심해 골랐을 그녀의 집에 놓인 모든 것이 쉬이 보이지 않았다. 작은 것 하나에도 의미와 애정을 담고 있는 그녀의 집은 큰돈 들여 으리으리하게 지은 집보다 훨씬 감동적이다. |
1 포인트 벽지와 포인트 조명으로만 힘준 침실. 침대 옆에는 알전구로 브래킷을 만들었다. 2 알뜰하게 공간을 활용한 드레스룸. 3 드레스룸 한쪽에 매일 입고 벗는 옷을 걸어둘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두었는데 이는 아무데나 옷을 걸어두는 남편을 위한 배려라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