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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아이카키즈카 2008. 8. 4. 02:38

기획연재 -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 그 바른 실현을 위하여①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이란 무엇인가?

일화스님/ 총무원 사회국장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 북녁과 아프리카에서 계속되고 있는 기아, 온난화된 지구에 내리는 산성비와 엘리뇨로 인한 이상난동 그리고 오늘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숱한 실업과 외채위기….

`이 시대의 청년불자인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가슴에 피가 끓는 청년불자들인 우리는 오늘 이러한 작금의 현실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자 하는 청년불자들이 작은 희망의 불빛을 볼 수 있는 하나의 운동이 있다. 불교의 사회적 실천, 요익중생의 자비사상구현이라는 기본 취지로 현 조계종총무원장(송월주큰스님)께서 취임초기 제창하여 잔잔히 추진되고 있는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이 그것이다.

본지(本誌) 『청년불교』는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이 이 시대 불자의 신행지침으로서 바르게 서야 하며, 위와 같은 우리 젊은 불자의 물음에 확실하고 정확한 해답을 제시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3월호부터 1년간 기획연재기사로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 그 바른 실현을 위하여」를 게재키로 하였다.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이 이 시대 심신이 가난하고 아픈 모든 우리 이웃들에게 든든한 삶의 지팡이가 되기를 발원하면서…. -편집자주-

1.들어가는 말

부처님 열반 후 오백세에 이 세상에는 진리를 구하는 중생이 아주 희유(希有)할 것이라고, 금강경은 전하고 있다. 2540여년전 그때, 부처님과 수보리가 기수급고독원에서 그렇게 걱정하며 언급하는 "후 오백세의 중생"이란 누구인가. 바로 오늘날의 우리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시대는 지금 바야흐로 20세기가 끝나는 세기말을 맞고 있으며 진리를 믿고 섬기는 중생이 그야말로 희유한 시대인 것이다.

세기말적 인간소외 현상은 물론이고 갖가지 병폐가 이 시대를 뒤흔들고 있다. 날로 증가하는 인간사회의 온갖 부조리와 각종 끔찍한 범죄들과 이기적 병폐들이 우리 사회를 휩쓸며 삶의 모습을 날로 더욱 어둡게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사는 이 나라에서 그와 같은 현상들은 한층 더 심화되고 있다. 도덕적 혼란상이 가중되어 물질만능․황금만능사상이 사회를 물들이고 있고 폭력과 범죄가 그칠 날이 없다.

그리하여 각종 이기적 사회악들이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최근에는 IMF 구제금융을 받으며 소위 `정축국치'라고까지 불리는 경제치욕을 당하며 너나없이 삶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에까지 이르러 있다.

이러한 시대, 진리의 기르침들이 휴지처럼 나뒹굴고 있는 이러한 시대, 부처님 열반후 오백세인 이 시대에, 과연 종교는, 특히 불교는 어떤 역할을 해야만 하는가.

2. 그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불교는 위와 같은 사회적 제반 문제들을 해결하고 그 문제해결을 위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대단히 미온적이어왔다. 그리하여 오늘날 불교가 일부 비신도나 타종교인에게 자칫 기복신앙으로 오인되는 우를 스스로 유발하여 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흔히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으로 요약되는 부처님의 기본 사상은 결코 중생의 아픔을 외면하고 혼자만 깨달음을 구하자는 식의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어찌보면 오히려 중생을 구원하자는 것이 깨달음의 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는 불교의 근본 사상인 「椽起」는 심지어 미물과 초목과도 우리의 존재가 함께 이어져 있는 것임을 강조하는 것인데 하물며 함께 살아가는 내 이웃의 아픔을 외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임이 자명한 일 아니겠는가.

결국 위와 같은 삶의 위기 극복, 사회 악의 청산과 정신적, 현실적 삶의 질향상은 바로 불교가 추구하는 근본 이상인 것이며, 또한 그것이 어느 개인 혼자만 잘 살자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잘 살자는 것, 심지어는 기쁨보다는 고통을 함께 나누어 중생의 슬픔과 아픔에 함께 동참하고 그에서 벗어나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고통과 어려움들을 극복할 것인가? 그 대안은 무엇인가?

어찌하여야 그러한 고통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모두가 질적으로 잘살 수 있을 것인가?

3. 어떻게 실천하는가.

"깨달음의 사회화운동"은 또한 바로 그 방안을 제시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중생들과 함께 나누고 나 자신과 사회구성원의 삶을 바르게 변화시켜 이땅에 깨달음과 지혜로움이 충만하게 하고, 모두가 고통에서 떠난 대자유인으로 잘살게 하자는 생활실천운동인 것이다.

결국, 소극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 나가자는 운동이 "깨달음의 사회화운동"이며, 불교가 앞장서서 이 시대의 어둠을 빛으로 밝혀보자고 하는 보살도의 실천운동인 것이다.

연기적 사상에 입각하여 인연과 인연의 소중한 끈으로 연결된 각각의 고마운 "나"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고 그들을 위해 내가 해 주고 나누어 줄 수 있는 일을 시작하자. 나와 나의 가정부터, 나를 둘러싼 주변인들에게 "자비"를 나누고 베풀어 주는 일을 시작하자. 그런 실천이야말로 되돌려 주는 일, 「회향(回向)」의 다름 아니다.

인연 닿는 사람마다 부처님의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 이웃에게 자비를 실천하며, 장애인을 위한 자원봉사도 좋고, 집에서의 쓰레기 분리수거 같은 작은 일을 행하는 것도 이 운동을 실천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주변에 불자들의 모임을 만들어 공동의 신행활동을 펼치거나 지역문제에 한 목소리를 내는 것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각자각자 모임모임 마다에서의 헌신적 회향을 통해 부처님이 깨치신 이 크고 원만한 자비가 이땅 구석구석 방방곡곡에 햇살처럼 환하게 퍼져나갈 때 「깨달음의 사회화운동」은 저절로 완성되어지는 것이다.

이 운동을 통해 불교는 홀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닌, "연기"의 관계로 이루어진 이 사회에, 그 역할과 소명을 다하게 되는 것이며 또한 이 사회와 인류에 희망과 빛이 되는 중심사상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미래를 향한 무궁한 가능성과 도전의 용기를 지닌 젊은 불자들이 자신을 버리는 보살도의 정신으로 이 운동에 적극 앞장서야 한다. 그러한 때 이 운동은 조만간 이 사회에 요원의 들불처럼 퍼져나가리라. 더불어 대불청의 젊은 불자들이 적극적으로 이 운동에 동참하기를 간절히 서원한다.

월주님과의 <잠깐 인터뷰>

- 깨달음의 사회화운동은 스님의 총무원장 취임후 제창하셨는데, 그 취지는 무엇이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나와 둘이 아님을 인식하시며 연기의 법칙을 설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깨침을, 그 법을, 전하는 것만이 이 시대에는 다만 능사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나와 별개의 존재가 아닌 중생이 당하고 있는 가지가지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진정한 보살행이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구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때문입니다.

지금의 사회에서는, 1백여년 전에는 생각도 못한 문제들이 중생에게 각종의 고통과 어려움을 주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닙니까? 우선 그 예로 환경오염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요. 대기, 수질 오염으로 인해 하물며 물마저도 마음놓고 마실 수 없고 숨마저도 가벼이 쉴 수 없는 현실이란 말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중생이 처하여 당하고 있는 각종 고통을 덜어주며 모든 중생에게 자비를 나누며 각자각자 사회구성원의 삶을 바르게 변화시켜 주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야만 이땅에 깨달음과 지혜가 충만한 불국토가 건설된다는 것이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의 취지입니다.

일찍이 원효스님께서는 요익중생(饒益衆生), 즉 "중생에게 널리 이익을 주어라"고 설파하셨는데 다시 말해서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은 중생을 괴로움에서 건져내 이롭게 하여 주는 보살정신의 실천운동인 것입니다. 또한 이 시대를 가늠하고 이끌어가는 시민사회운동기도 합니다.

-결국, 이 시대를 바르게 이끌어가는 불자들의 지침이자, 보살도의 실현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쉬운 일례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보현행의 실천으로 이루어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엄경 보현행원품에 보면 "보현행을 행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다"라는 간곡한 말씀이 있습니다. 깨달음의 사화화운동은 일체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고통을 함께 나누는 보현행원을 실천하는 운동에 다름 아니지요. 그러기에 그 일환으로 우선, 우리 불교 내부에서 할 일은, 혁신적 전법사업을 펼치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며, 대사회적 정의․ 인권 ․복지 구현을 위한 활동을 벌여나가는 것입니다. 전법사업으로는 문화재사찰 포교 활성화나, 지역불교 중흥을 꾀하는 일, 청소년교화사업, 지역별 불교교양 대학들을 설립하는 일 등 다양한 사업들을 들 수 있을 것이고, 그밖에 사회적 정의․ 인권․ 복지사업으로는 부의 공정한 분배, 집단적 폭력과 권력으로부터의 권익 보호나 노동자 권익보호, 장애인 및 아동, 여성의 권익보호와 빈민구제사업 등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밖에도 환경보호와 사찰문화재 보존 및 창달을 위한 사업에도 힘을 쏟아야 할 것이구요. 더 열거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앞서도 언급했듯이 중생의 이로움을 위하여 깨달음을 회향하는 정신으로 실천해 나간다면 그것이 모두 이 운동의 실천방안이 될 것입니다.

아무튼 대한불교청년회 여러분들이 앞장서서 이 운동을 실천해 주신다니 고맙게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계속적으로 동참하여 주시기를 바라며, 저도 적극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바쁘신 가운데 인터뷰를 위하여 좋은 말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보현행을 행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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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9년(1995년) 4월 18일(불교신문)에 실린 대승불교의 본 면목을 구체적

행동으로 실천하는 깨달음의 사회화운동에 대한 총무원장스님의 법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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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마음’ 즉 眞如 그 자리는 본래 청정하고, 본래 걸림이 없고, 작기는 겨자씨보다 작고, 크기는 모든 우주를 감싸고도 남는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靑黃赤白의 색상과 方圓長短의 형상과 선악 시비를 떠나고, 무한한 위신력과 지혜와 자비를 갖춘 자리며, 생사를 초월한 자리이다.

우리가 마음을 갈고 닦아, 진리를 깨닫고 보면 나와 이웃이 둘이 아니며, 민족과 인류와 삼라만상이 모두 둘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러나 나와 이웃과 자연이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것을 관념으로만 아는 것에서 벗어나, 이타적인 보살행을 중생이 살고 있는 삶의 현장 속에 구체적인 모습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깨달음의 사회화’운동을 전개하였다.

깨달음의 중생화, 깨달음의 세계화, 깨달음의 우주화는 부처님의 기본 가르침이므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화엄경》 <보현행원품>에 “보현행을 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다”라는 간곡한 말씀이 있으며, 원효 스님께서는 일찍이 “歸一心源하고 饒益衆生하라. 본래 청정한 마음 바탕자리로 돌아가라. 그리고 중생에게 이익을 주라.”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만공 스님은 “세상은 하나의 꽃과 같다.”하시며 ‘세계일화’사상을 주창하셨고 종정 월하 스님께서도 금년 신년 법어에서 “남을 위하여 몸을 버리면 진리의 몸을 얻는다.”라고 말씀하셨다.

한마디로 ‘깨달음의 사회화’는 불교의 진리를 일상생활 속에 구체적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며 대승불교 본래 가치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한국불교의 근본교리는 대승불교이며, 수행에서는 선수행이 근간이다. 그러나 수행으로 시작해서 수행으로 끝나는 것은 소승적이고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이 경계하셨다. 수행에만 치우쳐 이타적인 보살행을 하지 않는다면 더불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고통을 함께 나누는 불교 본래의 가치인 자기행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경전 속에 있는 기본신앙의 의미는 이웃과 민족, 사회 국가가 모두 함께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자는 것이다. 그러할 때 기복신앙은 그 자체로 종교적인 의미가 있다 하지만 자신의 행복이나 출세와 입신, 가족의 행복만을 구하고, 가족의 이익만을 얻기 위한 기도는 소승적 구복신앙인 것이다. 우리 불자들은 자기 구복신앙과 자기 수행에만 치우쳐 있는 것에서 나아가 참마음을 깨달아 중생에게 전하고 함께 실천해야 한다.

“친구여, 이를테면 여기에 갈대 단이 있다고 하자. 그 갈대 단은 서로 의지하고 있을 때는 서 있을 수가 있다. 그것과 같이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두 단의 갈대에서 어느 하나를 치운다면 다른 갈대 역시 넘어질 것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이것이 사라지므로 저것이 사라지는 것이며, 저것이 사라지므로 이것이 사라진다」”<아함경>

인간은 자기 혼자만 살고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重重無盡의 相依相關 관계 속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며 시간적으로 인연과의 원리 속에 존재하게 된다. 나와 더불어 삼라만상이 함께 존재하며, 또한 나와 이웃과 자연과 더불어 내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깨달음의 사회화’는 일체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고통을 함께 나누는 ‘보현행원’을 실천하는 운동이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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